「 정갑영ㆍ이명옥 명화ㆍ경제 토크 」
  2007-10-25 오후 6:23:39 조회수 : 4728  
 
경제ㆍ미술은 `돈`으로 연결된 한뿌리

"요즘 미술품 구입 바람이 불면서 인기 작가의 작품값이 크게 오르고 있어요.

공산품이야 가격이 급등하면 생산을 늘릴 수 있지만 미술품은 그럴 수도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미술품은 공급탄력성이 전혀 없는 셈이죠."(정갑영 부총장)

경제와 미술의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 쓴 책 '이명옥과 정갑영의 명화 경제 토크'를 출판한 원로 경제학자 정갑영 연세대 부총장(59)과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52)이 최근 정 교수의 연세대 집무실에서 만났다.

경제와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은 "평범한 그림이 명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도 경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으며,시대를 풍자하는 화가의 예리한 붓끝에서도 '경제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정 부총장과 이 관장은 자연스럽게 미술품을 둘러싼 경제 일화와 그 속에 스며든 경제논리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얘기를 풀어나갔다.

"일부 화가의 그림값이 치솟으면서 벌써 투자이익을 챙기는 컬렉터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작품을 사서 실컷 감상하고 돈까지 벌어주니 재미가 짭짤할 겁니다.

아마 이들의 대부분은 '그림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가격이 폭등한다'는 경제원리를 예견한 사람들이라고 봐요." 이 관장이 먼저 운을 뗐다.

정 부총장은 "그런 측면에서 경제학자가 유리한(?) 점이 있다"며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2차 세계대전 후 그림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긴 사례를 소개했다.

그림 가격이 공급탄력성이 작다는 속성을 간파한 케인스는 종전 뒤 값이 폭락한 프랑스 그림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후 유럽 경기가 회복되자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는 것.

이 관장은 "그림과 경제는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다른 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며 "두 분야는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풍요를 추구하는 경제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미술 사이에는 '돈'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 부총장 역시 '돈'이 경제와 미술의 공통분모라는 데 공감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는 '돈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16세기 인기 초상화가인 홀바인에게 당시 상인들이 초상화를 주문한 사연에도 '돈의 힘'이 숨어 있거든요.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의 주요 고객은 군주를 비롯,귀족 성직자 등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당시 국제무역을 통해 재산을 모은 '큰손'들이 초상화의 새로운 고객으로 들어옵니다."

얘기가 무르익자 최근 그림시장이 투자를 넘어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에 이르렀다.

이 관장은 "처음에는 그림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대박'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실제로 그림에서 투기의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네덜란드 정물화가 보스하르트의 작품 '꽃병'이 '튤립 파동'을 일으켰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림 속의 튤립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림을 구입하지 못한 고객들이 꽃을 사려는 수요자로 돌변하면서 튤립 가격이 폭등한 거지요.

당시 최상급 튤립 뿌리 한 개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넣을 정도였으니까요.

튤립 투기'광풍'으로 네덜란드 경제는 엉망진창이 됐고요.

또 1914년 프랑스에서는 세계 최초의 아트펀드'곰의 가죽'이 무명의 피카소와 마티스 작품을 대거 사들이자 작품값이 급등한 적이 있어요.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은 지금으로 말하면 그림시장의 '작전'인 셈이죠."

정 부총장은 "지난 5월 미국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전후 현대미술품으로는 최고가인 673억원에 낙찰됐다"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그림의 이면에는 현대미술의 '왕좌' 자리를 지키려는 미국의 자본주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림권력'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2007.10.25 한국경제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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